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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자료

회지석

  • 제작연도

    조선

  • 분류

    --

  • 재질

  • 규격

※ 4유형: 출처표시|비상업적 이용만 가능|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저작권 보호분야 “회지석”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상세 내용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기록하여 묻은 판석을 말한다. 덕수 이씨(이우) 부부묘 중 이우 묘에서 출토된 지석이다. 묘주(이우,李瑀) 1697(숙종 23)~1767(영조 43)의 회지석 출토수량은 32점. 묘주(이우 첫 배위 전주최씨)의 회지석 출토수량은 19점. 묘주(이우 후 배위 광산김씨)의 회지석 출토 수량은 20점이다. 명칭: 이우묘 출토 토제지석 이명칭: 李堣墓 出土 土製誌石 조선 중기의 문신 이우(李堣)(1697~1767)의 묘에서 출토된 토제지석. 총 52점. 모두 평면 정방형이며 동일한 크기로 제작됨. 앞면에는 내용이 음각되고 먹으로 채워짐. 11장은 한 글자씩 음각되어 있고 41장은 네 글자씩 음각되어 있음. 앞쪽 21장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兵曹叅判兼同知義禁府事) 덕수(德水) 이(李)공의 묘’라고 음각되어 있음. 지석의 내용은 ‘공의 휘는 우(堣)이고 자는 성빈(聖賓). 아버지는 증 참판(贈叅判) 휘 희함(喜涵)이고, 어머니는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군수 휘 진(鎭)의 딸임. 계묘년(1723)에 생원이 되었고 신미년(1751)에 국제(菊製)에 장원급제하였음. 첫째부인 최씨와 둘째부인 김씨는 처음에 왼쪽 기슭에 장사를 지냈는데 기축년(1769)에 신좌(辛坐) 언덕으로 이장(移葬)하였음. 양자 택진(宅鎭)은 전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임’ 등임. 자녀와 손주의 배우자 등의 내력이 새겨져 있음. 묘는 현재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소재하는데, 본래 이우의 선대는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세거하다가 15세기 후반 이우의 7대조인 이의번(李宜蕃)대에 이르러 광주로 이거한 것으로 추정됨.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 등을 기록하여 묻은 판석임. 2017년 공공택지 개발로 이우 선조의 묘역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어 덕수 이씨 문중에서 기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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